- 주요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남·북극의 과학기술 패권을 위해 정교한 전략을 수립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기초과학연구와 극지환경보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 경제, 외교적 영향력 확대 경쟁은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지난 11월 22일 우리나라 극지활동의 미래를 위한 「제1차 극지활동 진흥 기본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심의·확정되었다. 해양수산부와 관계부처 및 유관기관의 오랜 기간 준비와 국내 극지전문가의 의견수렴을 통해 마련된 이번 기본계획에는 남·북극에서 수행될 모든 활동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4월 제정된 「극지활동 진흥법」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극지활동의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세부적인 목표와 추진전략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첫 법정계획이 체계적으로 마련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극지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 공간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남·북극의 과학기술 패권을 위해 정교한 전략을 수립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기초과학연구와 극지환경보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 경제, 외교적 영향력 확대 경쟁은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대한민국이 남·북극 국제 거버넌스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는 현재 극지환경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글로벌 이슈를 파악하고,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환경을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능력과 정책적 비전을 갖춰야 한다.
극지는 글로벌 기후변화의 원인지(地)인 동시에 반응지(地)이다
과거, 극지는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많은 기후변화 신호가 극지환경 변화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규명되면서, 관심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글로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북극의 해빙 분포 변화는 한반도 겨울철 한파는 물론 사계절 기후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북극해 전역 해빙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는 초소형 위성이 개발되어야 한다. 북극발 한반도 극한재해기상을 예측하기 위한 한국형 「해양-대기-해빙 통합모델」 개발도 필요하다.
또한, 전 지구 해수면 상승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남극 빙하·빙붕의 용융 프로세스를 밝혀내고, 해수면 상승 속도와 침수 피해 취약성에 대한 예측 시나리오가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후변화 대응 프런티어 과제가 이번 기본계획에 포함됨으로써 세상의 끝 극지에서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극지는 첨단 인프라 구축의 각축장이다
2009년 국내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건조된 이후,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남·북극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주요 국제공동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창출하였다.
하지만, 북극점을 포함한 북극해 전역 탐사를 위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쇄빙 능력을 갖춘 새로운 쇄빙연구선이 필요하다. 기본계획에 포함된 15,000톤 급의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2026년까지 건조된다면, 북위 80도 이상의 고위도 북극해 연구를 국제사회에서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축이 완성되어, 아시아 국가 최초로 북극점 중심 국제공동탐사를 수행할 수 있다.
또한, 해안가에 위치한 남극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의 지리적 한계점을 극복하고 남극대륙 미답 지역 탐사를 위해서는 내륙에 위치한 제3의 기지건설이 필요하다. 육상 진출을 위한 K-루트를 개척하고, 세계 6번째 남극내륙기지가 2030년까지 건설된다면 남극 심부빙하와 빙저호 시추를 위한 교두보가 마련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과거 기후변화 정보를 재구성할 수 있고, 고립된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미지 생명체의 존재를 규명할 수도 있다.
극지활동의 지속가능성과 성공여부는 차세대 인력양성에 달려있다
이번 ‘극지 기본계획’에 포함된 극지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미래지향적 추진전략이다. 쇄빙연구선과 과학기지와 같은 인프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의 투자로 구축될 수 있지만, 전문인력은 오랜 기간 교육과 지속적인 연구환경 투자를 통해서만 배출될 수 있다. 극지 관련 국내 대학 네트워크 강화와 극지 장학사업을 통해 과학연구, 해운 및 운항, 국제협력 분야별 맞춤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특히, ‘북극써클’, ‘남극조약 협의당사국 회의’와 같은 주요 국제회의에서 극지 거버넌스 의제를 발굴할 수 있는 극지정책 전문가의 양성은 필수적이다. 끝으로, 다양한 극지이슈를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범정부 극지정책 협의체(가칭)’가 설치된다면,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극지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구심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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