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과 괴물의 대서사시를 넘어…“인간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형덕 기자 | 시사K뉴스 문화산책
3천 년 전의 이야기가 2026년 여름, 다시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The Odyssey》가 그 주인공이다.
호메로스의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런데 그 귀향길이 무려 10년이다.
전쟁 10년, 방랑 10년.
한 인간이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2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야 했던 것이다.
■ 3천 년 전 고전에 세계가 다시 열광하는 이유
《오디세이아》에는 오늘날 판타지 영화 못지않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노래, 마녀 키르케, 바다의 신 포세이돈….
그러나 이것만으로 3천 년 동안 이 작품이 살아남았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디세이아》의 진짜 힘은 괴물에게 있지 않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마음’에 있다.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새로운 왕국도, 더 많은 보물도 아니었다.
그가 돌아가고 싶었던 곳에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었다.
그래서 이 거대한 서사시를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귀향(歸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어로는 Nostos(노스토스)다.
떠난 사람이 수많은 시련을 겪은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
어쩌면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 아주 오래전부터 품어온 가장 근원적인 주제인지도 모른다.
■ 놀란은 영웅보다 ‘전쟁에서 돌아온 인간’을 바라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려한 전투와 거대한 바다, 신과 괴물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인간에게 과연 전쟁은 끝난 것인가를 묻는다.
몸은 전쟁터를 떠났지만 기억과 죄책감, 상실과 공포는 여전히 인간의 내면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우스의 10년 방랑은 단순한 항해가 아니다.
전쟁을 경험한 인간이 다시 가족에게, 다시 일상으로,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긴 여정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3천 년 전 이야기가 놀랍도록 현대적으로 다가온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끝났다는 뉴스 한 줄로 개인의 전쟁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고, 무너진 일상을 복원해야 한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지금 우리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 기다리는 사람의 20년도 ‘오디세이’다
이 영화와 원작을 이야기하면서 놓쳐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다.
남편은 20년 동안 집을 비운다.
사람들은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구혼자들이 왕궁을 차지하고 페넬로페에게 재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린다.
낮에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고 밤에는 다시 풀어내며 시간을 번다.
남편이 바다에서 괴물과 싸우는 동안 페넬로페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디세이아》는 떠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돌아오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아들 텔레마코스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떠날 때 어린아이였던 그는 아버지 없이 청년으로 성장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가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돌아온다.
결국 《오디세이아》는 거대한 모험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 IMAX라는 거대한 화면에 담긴 가장 작은 소망
놀란은 이번 작품 전체를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는 기술적 도전을 선택했다.
그러나 역설적이다.
스크린은 거대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소망은 아주 소박하다.
“집에 가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신과 인간이 충돌하고 거대한 파도가 배를 삼키며 괴물이 등장해도 결국 한 인간이 원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 단순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3천 년의 세월과 최첨단 영화 기술이 만났다.
■ 영화 한 편이 고전을 다시 깨우다
《오디세이》의 흥행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영화관 안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다시 호메로스를 찾기 시작했다.
영미권에서는 《오디세이아》를 비롯한 그리스 고전에 대한 관심과 판매가 크게 늘었다는 보도도 나온다.
스마트폰과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시대에 3천 년 된 서사시가 다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좋은 영화 한 편이 고전을 박물관에서 꺼내 다시 살아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낸 셈이다.
■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오디세이’가 있다
영화를 생각하다 문득 여행을 생각한다.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날까.
낯선 풍경을 보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기차를 타고 작은 바닷가 도시를 찾고, 바다를 바라보고, 골목을 걷고, 낯선 사람과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기차에 오른다.
여행을 떠날 때는 새로운 곳을 향하지만 여행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돌아감이 있다.
그래서 여행은 어쩌면 아주 작은 오디세이다.
묵호역에 내려 바다를 만나고 논골담길을 걸어 묵호등대에 오른 여행자들도 결국 저녁이 되면 다시 자신의 삶을 향해 떠난다.
그러나 돌아가는 사람은 떠나오기 전의 사람과 완전히 같지 않다.
바다 하나를 보았고, 사람 하나를 만났고, 이야기 하나를 가슴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행이 인간에게 주는 힘인지도 모른다.
■ 문화산책을 마치며
《오디세이》를 단순한 블록버스터로만 본다면 거대한 화면과 스펙터클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영화는 오래된 질문을 우리에게 건넨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3천 년 전 오디세우스가 바다 위에서 품었던 질문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질문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호메로스의 이야기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2026년,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 오래된 질문을 다시 거대한 스크린 위에 올려놓았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여행은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이번 《오디세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오래되고도 새로운 이야기는 어쩌면 바로 ‘귀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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