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객 숫자보다 중요한 ‘돈이 머무는 도시’의 조건
요즘 묵호에는 여행자가 많다.
묵호역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캐리어를 끌고 골목을 걷고,
논골담길과 묵호등대를 찾는다.
주말이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지역 상권도 함께 활기를 띨 것 같다.
그런데 현장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체감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은 많은데 소비는 예전 같지 않다.”
이 말이 자주 들린다.
천곡동에서도 비슷한 걱정이 나온다.
동해시 중심 상권인데도 문을 닫은 점포와 임대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정확한 상가 공실률은 객관적인 조사 없이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빈 점포가 시민의 눈에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도시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사람이 많이 오는 것과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과연 같은 말인가.
관광객 100만 명이 와도 돈이 빠져나가면 지역은 가난할 수 있다.
관광정책에서는 방문객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당연하다.
사람이 와야 소비도 일어난다.
하지만 관광객 수와 지역경제 효과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가 동해에 와서 사진만 찍고,
온라인에서 예약한 숙박시설을 이용하고,
대형 플랫폼을 통해 결제한 뒤,
몇 시간 후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면 어떨까.
방문객 통계에는 한 명이 추가된다.
그러나 지역의 작은 가게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관광의 질문은
“몇 명이 왔는가”에서 “그들이 어디에서 얼마를 쓰고 갔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여행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과거 여행에서는 현장에서 결정하는 소비가 많았다.
숙소를 찾아가 예약하고,
식당을 골라 들어가며,
기념품도 현장에서 샀다.
지금은 다르다.
숙박부터 교통, 음식점 정보까지 스마트폰 안에서 여행이 상당 부분 결정된다.
SNS에서 유명한 장소 몇 곳을 정하고,
사진을 찍은 뒤,
다음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하는 여행도 흔하다.
이른바 ‘인증 관광’이다.
관광객은 늘어났지만 지역과 접촉하는 시간은 오히려 짧아질 수도 있다.
이것이 관광객 증가가 반드시 골목상권의 매출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삼전닉스’가 소비를 죽였을까
최근에는 ‘삼전닉스’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 기업에 투자자금과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주식시장은 활황인데 음식점과 골목상권에서는 경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역설을 설명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동해지역 소비 위축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했다고 해서 그만큼 지역 소비가 줄었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는 입증하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자산시장과 생활경제의 체감온도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가지수가 오르고 특정 산업이 호황이어도,
자영업자의 하루 매출과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경제의 숫자와 골목경제의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존재한다.
소비자가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의 소비를 단순히 불황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쓸 곳을 더 엄격하게 선택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평범한 것에는 지갑을 닫고,
특별한 경험에는 돈을 쓴다.
일상적인 상품은 온라인에서 싸게 사고,
여행지에서는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이 변화는 작은 관광도시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묵호에서 서울에서도 마실 수 있는 커피를 판다면 가격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묵호의 바다와 사람, 차와 이야기가 결합된 경험을 판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행자가 지갑을 여는 이유는 물건 하나가 아니라 기억할 만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묵호의 문제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이 점에서 묵호는 중요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미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면 다음 문제는 명확하다.
그 사람을 어떻게 머물게 하고, 지역 안에서 소비하게 할 것인가.
묵호등대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것으로 여행이 끝나서는 안 된다.
논골담길을 걷고,
중앙시장에서 음식을 먹고,
작은 가게에서 차를 마시고,
공방에서 체험하며,
수변공원에서 공연을 보고,
저녁까지 머물다가 숙박하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관광객 한 명을 더 데려오는 것보다 이미 온 사람을 두 시간 더 머물게 하는 것이 지역경제에는 더 큰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래서 ‘체류시간’이 중요하다
관광객의 지역경제 효과를 생각하면 아주 단순한 원리가 있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할 기회가 많아진다.
30분 머무르면 사진 한 장으로 끝날 수 있다.
두 시간을 머무르면 음료를 마실 수 있다.
반나절 머무르면 식사를 한다.
하루를 머무르면 숙박과 저녁식사가 더해진다.
다음 날까지 머물면 또 다른 가게와 관광지를 찾는다.
따라서 관광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방문객 숫자만이 아니라 체류시간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이다.
천곡동은 동해시의 중심 생활상권이다.
관광정책과 천곡상권을 서로 다른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 전체의 관점에서는 연결할 필요가 있다.
관광객이 묵호와 추암, 망상 그리고 무릉별유천지만 방문하고 천곡 중심상권을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면 관광객 증가가 천곡동 상권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관광객의 동선을 도시 전체로 확장할 방법은 없는가.
천곡에는 숙박과 음식, 문화시설과 생활상권이 있다.
묵호의 항구 감성,
천곡의 도심 생활문화,
추암의 자연경관,
무릉의 산악관광을 서로 다른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여행으로 연결해야 한다.
빈 점포를 실패의 흔적으로만 보지 말자
공실은 분명 위험신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도시가 새롭게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청년이 작은 가게를 시작하고 싶어도 높은 임대료와 초기 투자비 때문에 포기한다.
예술가는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다.
여행자는 지역 사람과 만날 장소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장기간 비어 있는 점포를 활용해
청년 팝업스토어,
지역작가 전시장,
여행자 라운지,
로컬푸드 판매장,
공유공방,
작은 공연장,
창업 실험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행정이 모든 가게를 운영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건물주와 창업자, 지역상인, 문화예술인 사이를 연결하는 ‘빈 점포 중개자’ 역할을 행정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원금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구조’다
지역상권이 어려워지면 흔히 지원사업부터 생각한다.
할인쿠폰을 발행하고,
축제를 열며,
행사 기간 소비를 유도한다.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행사가 끝나면 다시 조용해지는 상권이라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걸어서 이동하기 편하고,
밤에도 안전하며,
볼거리와 먹거리, 문화가 연결되고,
가게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고,
다시 찾을 이유가 있는 상권.
상권을 살리는 것은 돈을 나누어 주는 정책만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는 구조를 만드는 도시계획이어야 한다.
‘관광매출 지도’를 만들어보자
동해시가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것이 있다.
가칭 ‘동해 관광경제 지도’다.
관광객 숫자만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어느 시간대에 소비가 일어나는지,
숙박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는 어느 정도 소비가 흘러가는지 등을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데이터로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책이 달라진다.
관광객은 많은데 소비가 적은 곳,
점심에는 붐비지만 저녁에는 비는 곳,
관광객이 그냥 지나가는 거리,
재방문객이 많은 가게와 지역을 찾을 수 있다.
그때부터 관광정책은 감이 아니라 데이터에 근거할 수 있다.
관광객 수보다 ‘지역에 남은 돈’을 공개하자
앞으로 축제나 관광사업을 평가할 때도 질문 하나를 추가했으면 한다.
“몇 명이 왔습니까?”
그리고 바로 다음 질문이다.
“그래서 지역에는 얼마가 남았습니까?”
숙박업소 매출은 늘었는가.
시장과 음식점 매출은 증가했는가.
택시와 지역교통 이용은 늘었는가.
작은 가게에도 효과가 있었는가.
지역 주민의 일자리는 만들어졌는가.
관광객 증가가 시민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관광정책의 구조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동해에서 번 돈이 동해 안에서 한 번 더 돌게 하자
지역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돈의 크기뿐 아니라 회전이다.
여행자가 지역 식당에서 돈을 쓰고,
식당은 지역 농수산물을 구매하며,
지역 생산자는 다시 지역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렇게 한 번 들어온 돈이 지역 안에서 여러 번 돌수록 지역경제는 강해진다.
반대로 관광객이 많은 돈을 쓰더라도 대부분이 외부 플랫폼과 대형 유통망으로 빠져나간다면 지역에 남는 효과는 작다.
그래서 앞으로 동해 관광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관광객을 얼마나 데려올 것인가”가 아니라 “관광객이 가져온 돈을 어떻게 동해 안에서 더 오래 머물게 할 것인가.”
묵호의 여행자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천곡에는 다시 채워야 할 공간이 있다.
상인에게는 살아남아야 할 오늘이 있고,
청년에게는 시작할 기회가 필요하다.
이 네 가지를 하나의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관광과 상권,
문화와 창업,
묵호와 천곡을 따로 생각하지 말자.
도시는 하나의 경제 생태계다.
사람이 이동하고,
돈이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 흐름이 끊긴 곳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 도시정책의 역할이다.
묵호에 여행자는 많은데 왜 지역 상인은 경기가 어렵다고 느낄까요?
관광객이 적어서일까요?
아니면 관광객이 와도 충분히 머물고 소비할 구조를 우리가 아직 만들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천곡동의 빈 점포를 우리는 단순한 불황의 흔적으로 남겨둘 것인가요,
아니면 청년과 문화, 관광이 다시 들어오는 새로운 공간으로 바꿀 것인가요?
관광객 숫자가 도시를 먹여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지역의 가게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쓰인 돈이 다시 지역 안을 돌 때 관광은 비로소 지역경제가 됩니다.
동해가 이제 세어야 할 것은 관광객의 숫자만이 아닙니다.
동해에 남은 시간, 동해에 남은 관계, 그리고 동해에 남은 돈입니다.
《동해의 내일을 묻다 Ⅱ》는 세계와 국내의 사례를 살펴보고, 동해의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시민과 함께 고민하는 미래전략 칼럼입니다.
정답을 주장하기보다 사실을 확인하고, 질문에서 출발해 대안을 찾아가겠습니다.
좋은 질문이 도시의 미래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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